차이나 북

마지막 황제 푸이의 자서전

simpara 2009. 10. 21. 17:03

 

                                                          <내 인생의 전반기>

작가:  푸이(爱新觉罗·溥仪)

출판사:  췬중출판사(群众出版社)

 

 

발췌번역:

나는 네 명의 부인이 있었다. 당시 나는 황제였고 한 명의 비(妃)와 두 명의 귀인(貴人)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네들 누구도 내 부인이 아니었고 다만 장식에 불과했다. 즉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장식이었다. 비록 그네들이 당한 불행은 각기 달랐지만 결국은 그녀들 모두 같은 제도의 희생양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의 냉대와 원망을 받은 완룽(婉容)이 걸어온 길은 아마도 현대 신중국의 청년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출생했을 때 훗날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더라면 결혼과 동시에 잘 살았을 것이다. 훗날 난 자주 그녀가 만약 톈진(天津)에 있었을 때 원시우(文綉)처럼 나와 이혼할 수 있었다면 그런 결말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분명 원시우와는 달랐다. 원시우는 봉건적 신분과 예절, 규율보다 자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보통사람과 같은 가정생활을 원했다. 그러나 완룽은 '황후'의 신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름뿐인 부인이 되기를 원했으며 결코 '황후'의 신분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설령 그녀가 어느 순간 이혼을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녀의 상황은 원시우와 달랐다. 원시우는 그녀를 지지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완룽의 부친, 형제, 스승은 그녀를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를 하고 압력까지 행사했을 것이다.

완룽이 원시우를 떠나버리게 한 후부터 난 그녀에 대해 반감이 생겼고 그녀와 거의 말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속마음이라든지, 괴로움, 바람을 그녀 입으로 직접 듣지 못했다. 훗날 발생한 일에서 그녀도 결국 사람이고 일반인과 같은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룽은 보통 사람처럼 지내고 싶었지만 황후의 칭호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간통을 저질렀고 아편에까지 중독되었다. 어쨌든 그런 일이 모두 그녀 탓이 될 수 없었고, 최소한 전부 그녀가 짊어지게 해서는 아니되었다. 그러나 사실 당시 나는 모든 탓을 그녀에게 돌리고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 잡는 제도에 대해 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1935년, 그녀가 임신했고 출산에 임박해서야 나는 그녀의 임신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내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화가 났지만 일본인이 아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녀와 관계된 사람과 의심가는 사람을 구실을 찾아 한꺼번에 내쫓아냈으며 이혼까지 결심했다. 당시에 난 그녀를 폐품처럼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황실 내부에 있던 일본인 차관과 관동군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인을 감히 거슬리지 못했던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보란 듯이 '귀인'을 간택했다.

완룽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녀의 아이가 아직 세상에 있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화로 속으로 던져져 불타버린 것을 알지 못했다. 단지 오빠가 궁 밖에서 아이를 돌보는 줄 알고 매달 양육비를 보냈다.

1937년, 완룽에 대한 처벌의 표시이자 '황제'로서 꼭 필요한 장식품으로 새로 간택된 희생양 탄위링(譚玉齡)이 베이징에 있는 한 친척의 소개로 나의 새로운 '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