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스토리

장궈룽의 자살원인 추측 4가지

simpara 2009. 9. 8. 17:56

 

 

 

추측1 : 애정문제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으로 인해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 외에도 장궈룽(張國榮:장국영)의 사랑과 성적취향 역시 그의 노래와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가 빌딩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이 순조롭지 못해 삶을 끝내기로 결심했다고 억측했다.

거의 20년간 연예계에 몸담았던 장궈룽의 마지막 몇 년의 시간동안 그의 이름 뒤에 탕허더(唐鶴德:당학덕)란 이름이 항상 따라붙었다. 유서에서 장궈룽은 친구인 탕허더와 이십 대의 한 청년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택하기 어려워 자살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장궈룽과 탕허덕의 감정이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감정적인 갈등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1996년에서 1997년의 콘서트에서 장궈룽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月亮代表我的心)”란 노래를 공개적으로 탕허더에게 바쳤으며, 더구나 “탕선생은 어머니 외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였다. 이로써 장궈룽의 이름 뒤에 탕허더란 이름이 따라붙게 되었다.

탕허더는 장궈룽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로, 학창시절 학교에서 줄곧 두각을 나타내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장궈룽과 탕허더의 스캔들이 나돌자 장궈룽은 그와의 스캔들을 줄곧 부정하다가 1995년 언론의 추적에 의해 발각되었고 장궈룽은 화가 나서 취재차를 들이받았다. 그러나 탕허더와 10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던 장궈룽은 결국 1997년1월 콘서트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함으로써 커밍아웃했다. 2000년 두 사람 사이는 점차 안정되어갔고 공개적인 장소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같이 태국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탕허더 역시 장궈룽의 친한 벗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장궈룽의 44번째 생일을 축하하였다.

2002년 금마상 이후, 장궈룽은 오랫동안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며 그와 탕허더의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장궈룽은 두 사람의 감정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탕허더는 다른 상대를 찾았다. 이 일로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심지어 장궈룽은 두 사람 공동명의의 회사경영에서도 물러났다. 2002년9월, 46세 생일을 맞은 장궈룽은 아파트에서 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대접했지만 탕허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으며 탕허더의 조수 케네스가 오히려 주인을 대신해 손님들을 초청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장궈룽의 생일을 축하해줬고 장궈룽도 거기에 호응해 즉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었으며 두 손을 모아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첸쯔치앙(陈自强:진자강)과 끌어안고 손을 잡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한 친구가 탕허더와의 일을 폭로했고 겉으로는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장궈룽은 내심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늦은 밤 장궈룽의 집에서 자주 다투는 소리가 들렸으며 가끔은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장궈룽은 17년간 두 사람 관계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여러 번 되돌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되돌리기 위해 절에 가서 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마치 두 사람의 감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 했다. 그러나 2003년3월2일, 장궈룽과 탕허더가 홍콩 리펄스베이에서 같이 차를 마시는 모습이 기자에게 포착됐는데 두 사람 사이에 불화의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불과 한 달 만에 장궈룽이 투신자살하여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추측2 : 우울증

장궈룽이 영화<이도공간(異度空間)>을 찍고 우울증에 걸려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장궈룽은 이미 촬영하기로 약속된 새 영화 <상하이스토리(美麗上海)>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들리는 말에는 장궈룽이 2002년5월 <이도공간>을 촬영할 때 너무 지나치게 몰입하여 촬영을 다 끝내고 나서도 극중 캐릭터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됐다고 한다. 촬영이 끝난 여러 달 동안 장궈룽은 목소리에 힘도 없었으며 계속해서 약을 먹었다. 그러다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떠돌자 장궈룽은 원래 계획한 일들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는 쉬펑(徐楓:서풍)이 감독, 제작하기로 한 <상하이스토리>, <란위(藍宇)>, 스쉐(石雪)가 투자한 <투심(偷心:마음을 훔치다)> 및 음반제작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장궈룽은 스트레스가 정서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 외에 다른 사실들은 부정하였으며 2002년10월에는 직접 나서서 소문들을 반박하였다.

장궈룽은 검은색 양복으로 멋있게 차려입고 2002년 CASH골든세일음악시상식(CASH Golden Sail Music Awards)에 나타났다. 비록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음악시상식 측에서는 원래 그를 위해 비밀통로를 마련했지만 그는 정문으로 입장하여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더욱이 수시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알란 탐(譚咏麟)은 앞으로 나와 장궈룽에게 “당신이 우울증이라고 말하는데 왜 난 조금도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궈룽은 즉시 몸을 돌려 자신이 매우 활기차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때 장궈룽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무대에 올랐을 때는 장난스럽게 여성 사회자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매우 우렁찼는데 목이 전혀 쉬지 않았고 매우 건강해보였다. 당시 그의 모습과 전혀 다른 기사보도는 “우울증”이란 장궈롱의 사인(死因)에 대해 자연히 사람들의 의견을 엇갈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중에 밝혀진 그의 유서는 그의 죽음원인이 '우울증'때문이란 생각에서 완전히 떼어놓았다.

 

추측3 : 스트레스

완벽을 추구했던 장궈룽은 자신의 외형 및 팬들 마음속에 있는 이미지에 매우 신경 썼다. 46세였던 장궈롱은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고 감독으로 전향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장궈룽은 일찍이 “배우는 그저 바둑돌일 뿐이다. 감독이야말로 모든 영화의 영혼이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젊고 완벽한 모습으로 계속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홍콩에 영화제작사를 차려 감독이 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잘하려는 마음에 중국본토출신 배우이자 감독인 장원(姜文:강문)에게 가르침도 청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너무 지나쳐 원래 베이징, 칭다오 등지에서 이미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투심>촬영을 미루게 되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장궈룽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 자살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장궈룽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여론에 스트레스가 커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원인이 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2000년 이미 그가 동성애조직을 위해 무료로 '10대 뛰어난 동성애보도상'을 개최하고 심사하기로 수락함으로써 홍콩동성애에 기운을 북돋아주었고 결국 그도 커밍아웃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찍이 동성애관련기관을 위해 힘을 쏟은 그가 나중에야 동성애성향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얘기이다.

 

추측4 : 영화 <투심(偷心)>의 미완성

장궈룽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생전에 줄곧 마음에 두고 고심했던 영화 <투심>을 완성하지 못했다는데 대해 애석해했다. 이 영화는 장궈룽이 피땀으로 쏟은 작품이자 감독으로서 맡은 첫 번째 영화였다. 그러나 각본, 배우 등 모든 것이 다 준비됐지만 결국 자금문제로 영화를 끝내지 못했고 장궈룽은 이 때문에 줄곧 괴로워했다. 현재 <투심>의 각본을 맡은 여성작가 허지핑(何冀平)은 이 미완성의 영화가 장궈룽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며, 장궈룽이 이 영화를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2002년 봄부터 장궈룽과 허지핑은 함께 <투심>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상하이, 베이징 등 여러 지역을 다녔으며 의상, 도구, 배우, 조감독을 모두 섭외했지만 영화를 끝까지 찍지 못했다.

허지핑은 영화<투심>이 예술가의 감성을 묘사한 영화라며 결말은 매우 애절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당시 이 영화를 구상할 때 어느 홍콩사람이 투자를 하려고 했지만 장궈룽은 친구의 추천을 받은 중국본토 투자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투자자에게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결국 자금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해 영화가 무산됐다. 장궈룽은 다른 투자자를 찾는 것이 체면을 깎게 될까 두려워 영화촬영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이 일은 완벽주의자 장궈룽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허지핑은 “막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슬펐어요. 전 줄곧 영화가 완성됐다면 그는 어쩌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천하제일루(天下第一樓)>의 각본을 쓸 때 그에게 전화로 만약 기회가 있다면 영화를 끝내도록 그를 끝까지 도와줄 거라고 말했죠. 그는 슬퍼하며 그 영화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지만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듯 했어요. 전 마음이 정말 아팠죠”라고 말했다. 허지핑은 장궈룽과 만났을 때 무슨 우울증 같은 낌새는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자유롭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느꼈으며 동시에 혼자 높은 곳에 서있는 사람만의 외로움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성공하면 가끔 자신이 의지할 곳이 어디인지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출처: 深圳新闻网 《纪念张国荣:随风而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