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소설

꽃(1)

simpara 2016. 8. 18. 23:47

내게 가끔 돈을 빌려가는 후배가 있었다. 늘 돈에 쪼들려서 푼돈씩으로 내게 돈을 빌리는 녀석이었다. 불쌍해서 난 그냥 안 받는 셈 치고 그가 돈을 빌릴 때마다 얼마간의 돈을 쥐어줬다. 사실 내가 그 후배에게 아무 말 없이 돈을 쥐어주는 것은 학교 다닐 때 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난 집안이 어려워 등록금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후배는 아버지 사업이 번창하던 때라 내 등록금을 얼마간 보태주었었다. 대학 졸업 무렵, 후배 아버지 사업이 망했고 취업난에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도 직업을 갖지 못한 그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후배는 군대에 가게 됐다. 군 제대 후 그의 성격은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대학 때는 그래도 활발하고 잘 웃던 녀석이었는데 군 제대 후 만난 그는 우울한 표정에 대인관계를 꺼리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한동안 직장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이력서를 내보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그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잘 몰라도 가끔 내게 몇 만원 빌려가던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나는 지난날 나를 도와준 정에 그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비록 코딱지만한 회사라도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니까.

그날도 오후에 후배가 찾아왔다. 검은 칙칙하고 핼쑥한 얼굴에 다크써클이 짙게 깔린 얼굴이었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로 감싼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현관문 곁에 놓았다. 그리고 현관에 서서 집 안에는 들어오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

……왔냐.”

저기돈 좀……

……

나는 방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늘 주던 액수의 돈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

그런데 늘 돈을 주며 아무 말 없이 받아서 그대로 뒤돌아서던 그가 우물쭈물 할 말이 있듯이 현관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혹시 늘 받아가던 액수가 작다고 불평을 하려는가 싶어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뭔데?”

내 짜증 섞인 목소리에 후배는 당황하여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그냥혹시 꽃 좋아해?”

뜬금없이 꽃을 좋아하냐는 후배의 질문에 이번에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 갑자기 웬 꽃?”

사실 내가 신기한 꽃을 구했는데 형에게도 하나 주고 싶어서……

신기한 꽃이라고?”

꽃이 그게 그거지 신기한 꽃이라니........그래도 조금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 , 그럼,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

후배는 아까 현관문 곁에 놔두었던 신문지로 감싼 물건을 내게 건네주었다.

이거……

나는 그의 손에서 물건을 받아 신문지를 뜯어냈다. 화분이었다. 꽃이 심어진 화분………굵은 줄기에 녹색 잎사귀는 없이 커다란 6장의 꽃잎이 있었다. 그리고 꽃잎 색깔도 각각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이런 꽃은 본 적이 없어서 독특하긴 했다.

, 독특하긴 하네.”

후배는 씩 웃으며 말했다.

형을 행복하게 해 줄거야.”

행복? 정말 그런 거라면 날 줄 리가 있냐?’

꽃이 특이하긴 해도 행복을 줄 거라니,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암튼 그래……고맙다.”

……

?”

너무 꽃 앞에서 지내지는 마.”

무슨 소리야?”

꽃이 신기하다고 너무 앞에서 지내지 말라고.......”

알았어, 인마!”

, , 혹시 휴일에 꽃을 볼 땐 알람 맞춰서 봐.”

알람? 뭔 이상한 소리지?

그렇게 후배는 꽃 앞에 너무 있지 말 것을 여러 번 당부하고 나서야 현관문을 나섰다.

자식! 꽃 화분 하나 가지고 뭔 당부가 그리 많아.”

나는 화분을 거실 텔레비전 옆 진열대 한 곁에 놔두었다.

굵은 줄기에 커다란 꽃잎이 그런대로 멋있게 보였다. 특이한 꽃잎 때문에 받아주긴 했지만 다시 보니 정말 독특한 꽃잎이었다. 마침 진열대에서 남향을 바라보는 거실 베란다 가까이 둔 화분에 오후 햇살이 넓게 비췄다. 햇빛이 꽃잎에 닿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꽃잎 색깔이 무지개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묘하고 신기한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꽃 앞에 바짝 다가가 꽃잎이 무지개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신비한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다시 환해지면서 이 세상의 풍경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에 나는 한없이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꽃 안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식욕도, 수면욕도 사라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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