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소설

빨간 벌레(5)

simpara 2016. 8. 18. 23:45

<에필로그>

한 의사의 병원 일지.

2014.8.13.

늦은 밤, 한 중년 부부가 정신을 잃은 아들을 데리고 병원 응급실로 찾아왔다. 아들이 두통을 호소하다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일단 CT 촬영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다. 환자의 두부(頭部) 사진을 보니 뇌가 반쯤 없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벌레 모습이 사진에 찍혀있었다.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MRI 촬영도 시행했는데 역시 벌레 모습이 찍혀 나왔다. 어떻게 벌레가 뇌 속으로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2014.8.14

오전에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 사진에 찍힌 벌레 모습도 그렇고 일단 환자 부모에게 부검을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환자 부모는 처음에는 아들의 시신을 훼손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거절했다. 하지만 벌레 얘기를 하자 잠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환자의 머리를 부검하는데 동의했다.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증상들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허기, 환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환자 부모는 마지막에 환자가 머릿속의 벌레에 관해 얘기했지만 믿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죄책감 섞인 표정으로 돌아섰다.

2014.8.16

놀라운 일이다. 환자의 뇌를 해부해보니 뇌 속에 있는 건 역시 벌레였다. 그것도 피처럼 새빨간 벌레였다. 벌레의 등에는 6개의 점이 있었다. 벌레는 까맣고 기분 나쁜 검은 눈을 굴리며 몸통과 같은 새빨간 더듬이로 이리저리 주위를 탐색하듯 움직였다. 사진에서는 환자의 뇌가 반쯤 남아있었는데 열었을 때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해부한 나도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마도 그 붉은 벌레가 뇌를 먹어치운 듯하다. 하지만 의사생활 몇 십 년에 사람의 뇌를 먹어치우는 벌레가 있다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논문으로 발표한다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데 무척 기분 나쁘게 생긴 벌레였다. 특히, 그 번뜩이며 바라보던 눈이……

2014.8.28

그 놈이 날 먹고 있다. 어떻게 내 몸 속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분명 그 날 그 환자를 해부하고 뇌 속에서 꺼낸 빨간 벌레를 병 속에 넣어두었었다. 하지만 이틀 후 나는 극심한 공복감에 시달렸고 이어서 환각 증세가 나타났다. 그 환자가 겪었다던 증상과 똑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드디어 두통이 시작됐다. 이 글을 쓰는 내 손에 힘이 점점 없어져간다. 녀석은……이미 사람의 뇌를 맛본 녀석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누군가로 옮겨 다니며 뇌를 먹어치울 것이다……






* 빨간 벌레는 오래 전에 구상했고 내 첫 소설이다.

모티브는 자우림의 "벌레"라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