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소설

빨간 벌레(2)

simpara 2016. 8. 18. 23:41

빨간 벌레가 눈앞에 있다. 녀석의 입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온다.

싫어!’

녀석의 더듬이가 내 몸을 붙잡는다. 나는 꼼짝없이 녀석의 덫에 걸린 채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녀석이 날 삼키려고 한다.

저리가!’

순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를 보니 내 발이 없다. 내 몸이 없다. 빨간 색이 보인다. ‘안 돼!’

내 몸이 흔들린다, 흔들린다.

뭐하니, 밥 먹으라고 해도 안 내려오고, 빨리 일어나.”

엄마가 내 몸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다.

사실 밥은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다. 좀 전에 꾼 이상한 꿈도 그렇고 산에서 내려온 뒤로 계속 뭔가의 찝찝함이 남아있어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 밥 생각 별로 없는데.......”

그러자 엄마가 내 등짝을 철썩 때리며 말했다.

지금 안 먹으면 저녁 없다. 얼른 내려오기나 해. 네가 좋아하는 김치 고등어찜도 해놨어.”

결국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수저를 들고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꿀꺽. 먹기 전에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뱃속에 밥알이 들어가니까 갑자기 허기가 졌다. 입맛이 돌았다.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반찬이 꿀맛같이 느껴졌다. 허겁지겁 밥과 반찬을 입 속에 쑤셔 넣었다.

웬일이니? 네가 그렇게 밥을 맛있게 먹는 것도 처음 보네. 자면서도 배가 무척 고팠나 보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평소보다는 두 배, 세 배나 많은 양의 밥을 먹어치웠다. 엄마는 늘 깨작거리며 먹던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더니 기뻐서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렸다. 하지만 왠지 밥을 먹고 있는데도 자꾸 허기가 졌다.

갑자기 내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도대체 거지가 몇 마리나 들었기에 이렇게 자꾸 배가 고픈 것일까?

저녁에 해놓은 밥을 깨끗이 다 해치우고 나서야 나는 식탁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뱃속의 허기감은 그대로였다.

새벽에 자다가 심한 허기감에 눈을 떴다. 뱃가죽이 등에 붙는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저녁에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배는 이미 홀쭉해있었다. 곧장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 손에 잡히는 대로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익힌 거든, 익히지 않은 거든 닥치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입 속에 들어간 음식물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미각이 마비된 듯 그저 허기를 채우는데 급급했다. 우쩍우쩍. 꿀꺽꿀꺽. 와그작와그작.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는 더욱 더 강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음식물을 삼킬 때마다 배가 자꾸 꿈틀거렸다. 뭔가가 내 배 속에 있었다.

뭐지?’

내가 음식을 삼킬 적마다 내 배도 꿈틀거렸다. 뭔가가 내 배 속에서 내가 삼킨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이다! 그 녀석, 그 빨간 벌레!’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내 입을 통해서 내 위장에 자리를 틀고 앉아서 내가 삼킨 음식을 모조리 낚아채서 먹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삼킨 음식을 영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녀석을 내 배 속에서 꺼내야 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웨엑억지로 구토를 해 봤다. 그러나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방금 먹은 음식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쓴 물만이 나올 뿐이었다.

자꾸 허기가 진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허기가 진다. 녀석이 내 배 속에 있는 게 확실하다. 어떻게 녀석이 내 배 속에 있는 거지? 구역질이 난다. 녀석이 나의 위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시뻘겋고 징그럽고 꿈틀대는 벌레가! 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음식물을 녀석은 더듬이로 내 위 속을 이리저리 핥아가며 녀석의 입 속으로, 녀석의 배 속으로 바로 밀어 넣는 것이다. ! 너무나 배가 고프다.

녀석이 내 배 속에 자리를 잡은 후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먹기만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음식물을 입 안에 쑤셔댔다.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먹을 것을 쌓아놓고 먹어댔다. 그럼에도 내 배는 여전히 홀쭉했다.

녀석은 도대체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녀석은 도대체 언제까지 나의 위 속에 있을 작정인가? 게걸스럽게 한 그루의 모든 나뭇잎을 남김없이 갉아먹었듯 그렇게 날 갉아먹을 작정일까?

엄마, 먹을 거, 먹을 거, 빨리!”

제발……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벌써 3일째야. 제발 병원에 가자.”

엄마가 울면서 내게 매달리며 말했다.

만약 내가 그 녀석, 그 빨간 벌레 때문이라고 하면 아마도 날 정신병원에 넣을지도 몰랐다. 녀석 얘기는 차마 부모님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허기에 시달리는 난, 쉴 새 없이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먹지 않으면 미친 사람마냥 이성을 잃고 음식물을 찾아다녔다. 나는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부모님께 내 몸을 묶어달라고도 해봤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어떻게 된 건지 줄을 끊고 음식을 마구 입 안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부모님이 억지로 날 음식과 잠시라도 떼어놓아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괴력을 발휘하며 부모님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음식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말라가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이런 날 안타까워하며 체념한 듯 내 앞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가득 갖다놓을 뿐이었다. 녀석은 여전히 내 배 속에서 쉴 새 없이 꿈틀대며 내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을 그대로 받아먹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날 흔적 없이 갉아먹어버려라. 내 배 속에서 기생충처럼 내가 먹은 음식물을 도둑질하지 말고, 더 이상 내 배를 주리게 하지 말고, 그냥 날 갉아먹어 버리란 말이야. 네 멋대로 다 갉아 먹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