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벌레(1)
<프롤로그>
나는 지금 벌레에게 먹혀가고 있다. 이제 내가 그 녀석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잠시 후면 난 그 녀석이 될 것이다.......
내가 그 녀석과 마주친 것은 작년 여름 어느 날 토요일. 외곽에 위치한 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했을 때였다.
산은 무척 가팔랐지만 평소에 산을 잘 타기로 소문난 나는 친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가파른 산꼭대기에 제일 먼저 올랐다. 친구들이 날 따라오려면 족히 20분은 지나야 할 것이다. 산꼭대기에 도착하니 한 그루의 나무가 나를 반겼다. ‘나무? 이곳 산 정상에 나무가 있었나?’ 한창 무성한 잎을 자랑해야 할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에는 잎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은 잎들은 모두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찬찬히 남은 나뭇잎을 훑어보았다. 한 나뭇잎에 벌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아! 이 놈이었군!’ 녀석의 온 몸이 시뻘겋다. 어릴 적 이마에 돌을 맞은 친구의 유달리 선명하고 붉었던 피를 연상케 했다. 녀석은 새끼손가락만한 크기에 등에는 까만 점 여섯 개가 짝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에는 두 개의 더듬이가 있는데 역시 빨갛다. 그리고 까만 두 눈이 유달리 빛나 보였다. 마치 녀석의 눈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면 녀석의 눈 속에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번들 번들거렸다. 녀석은 뻘건 몸을 꿈틀대며 마지막 남은 멀쩡한 잎을 열심히 갉아먹고 있었다. 희한한 벌레다. 몸통이 온통 시뻘건 벌레도 태어나서 처음 봤지만, 녀석은 잎을 먹으면서 왠지 계속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마치 ‘그 다음은 네 차례야’ 라고 말하는 듯 잎을 갉아먹으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나를 주시하며 노리는 것 같았다.
눈초리가 왠지 심상찮다. 녀석의 시뻘건 몸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녀석의 눈이 계속 나를 향해 있다. 머리에 기다란 더듬이가 점점 길어져 내 몸을 더듬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을 꿈쩍할 수 없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다. 녀석의 끈적끈적한 더듬이가 내 몸을 훑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저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벌레가……. 녀석의 더듬이가 내 얼굴을 더듬기 시작한다. 녀석은 내 얼굴을 한참동안 훑어대더니 더듬이를 갑자기 내 입 안으로 쑥 집어넣는다. 구역질이 난다. 이게? 나는 토해내려고 캑캑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녀석은 오히려 내 목구멍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갑자기 눈앞이 희미해진다. 이런 젠장……!
휴, 공기가 부족한 산 정상에서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간 것일까 아님 잠깐 졸은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한없이 고요했고 그 빨간 벌레는 마지막 남은 잎을 계속 열심히 갉아먹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환각? 꿈? 왠지 찝찝하다.
그런데 왜 아직 친구들이 올라오지 않는 것일까? 시계를 보니 내가 정상에 올라온 지 이미 30분이 지났다. 산을 타는 실력이 나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체할 정도는 아닌데 이상했다. 십여 분을 더 기다렸지만 친구들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걸까?
나는 친구들이 걱정되어 올라오던 등성 맞은편으로 천천히 정상을 내려갔다. 가파른 길이었기에 조심조심 내려갔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계단이 있었다.
‘이런 곳에 계단이? 전에는 없었는데 누가 일부러 판 건가?’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십여 분쯤 내려갔을까? 또 다른 등성이가 솟아있는 곳이 나왔다. 그 곳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등성이를 따라 올라갔다. 그곳 정상에 다다르자 친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야! 너네들 왜 여기에 모여 있는 거야? 정상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상? 인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여기가 정상이잖아! 지금까지 얼마나 널 찾고 있었는지 알아?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서간 녀석이 이 곳 정상에서 안 보이니 우리가 얼마나 당황했다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여기서 내려가 저쪽 등성이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정상이 나오잖아!”
나는 약간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자식,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정상에 계단이라구? 여기 처음 왔냐? 정상은 여기잖아! 너 정말 어떻게 된 거 아냐? 혹시 우리보다 앞서가다 괜히 길을 잃고서 핑계를 댈 게 없어 그런 황당한 얘기를 하는 거 아니야? 핑계를 대더라도 좀 그럴듯한 것으로 대야지, 인마.”
친구들이 핀잔을 주었다. 친구들이 서있는 정상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와봤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럼 아까 거기는 어디였지?’
나는 아까 그 장소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나는 친구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아까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계단과 나무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장소를 찾다가 잘못해서 정말 길을 잃어 산을 헤맬 것 같아 결국 나는 그 장소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찝찝함을 버릴 수 없었다. 사실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장소보다는 그 녀석……그 빨간 벌레의 눈초리였다. 이상하게 기분 나쁘고 번뜩이는 눈………정말이지!
산을 내려온 나는 한기를 느꼈다. 친구들이 술 한 잔하고 가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등산 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어울렸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고 몸의 한기는 심해지는 듯 했다. 그 길로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곧장 내 방 침대에 몸을 뉘었다.
왠지 석연찮은 느낌이었다. 그 빨간 벌레. 그 눈초리. 그 구역질. 에이, 모르겠다. 정말 내가 잠시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 잠이나 자자.